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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Ecolon
2009. 3. 26. 20:52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수퍼에 들러 몇가지의 물건을 골라
계산대에 기다리는 중에, 앞 사람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약간 젖은듯한 머리에 말갛게 익은 얼굴의 아주머니가 고른 것은
통아이스크림 두통과 인스턴트 미역국 두개.
분명히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가 있을것만 같아보이는 분이었기에
정체모를 재료로 정성없이 끓인 국을 먹게될
그 가족의 식사광경이 떠오르면서
왠지모를 아쉬움이 들었드랬다.
그러다 슈퍼를 나오면서 문득
'그녀는 혹시 자신의 생일을 알아주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서러움으로
차마 정성스럽게 끓이긴 싫어 처량하고 청승맞게
구입하고 있던 건 아닐까?'
뭐 이런 되도않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상상력을 남용한 듯하지만 암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든지 정말 다 잘먹는 내게 '미역'이라는 건
거의 유일하게 먹지 '않는' 식재료이다.
(4개월의 군사훈련 때는 배고픔을 못이겨 먹기도 했었지만 말이다-_-)
'미역'국도 국물과 고기-_-만 담아먹으며,
'미역'줄기무침 따위는 손도 대지 않는다.
언젠가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로는
동생을 낳은직후 내가 극성을 부릴까봐
할아버지 댁에 맡겨놓은 동안
내가 미역국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할머니께서 계속 미역국을 끓여먹어서 질렸을 거라는
그런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선 '미역' 그 자체를 그렇게도 싫어하는 내가
그런 광경을 보고 '미역국=생일'과 같은 상상을 하고
처량해할 수 있었던거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신의 생일에 미역국을 먹지 못한다면
그건 처량한 일이라는 생각을 어느새 하고 있었던거다.
뭐..그냥 그랬드랬더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