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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리반점
Ecolon
2009. 2. 2. 22:20
저저번, 그 대전..에서의 일요일-_-로 인해
단 한 벌 있는 겨울정장이 심하게 더렵혀 졌드랬다.
그래서 세탁해야지 세탁해야지 하고 있다가
오늘 퇴근후에야 겨우 맡길 수 있었다.
헬스장 있는 동네가 주택가라 세탁소가 있겠거니 하고 가며 헤메다가,
우연히 만난 우리부대 어떤 분의 도움으로
간신히 세탁소를 찾아낼 수 있었드랬다.
그분이 소개해준 세탁소에 도차하니
불은 켜져있었지만 문이 잠겨있었다.
잠겨있는 문을 흔들며 가게를 둘러보니 문 옆에
'저녁시간 : 18:00 ~ 18:30' 으로 적혀있었고
(당시 시간은 6시가 조금 넘었을게다.)
1. 좀 기다렸다가 주인이 오면 맡길까?
2. 운동을 하고 와서 늦게 맡길까?
이렇게 난 고민하기 시작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 건너편에 간판 하나가 눈에 띄어버렸다.
'육리반점'
언젠가 평택맛집멋집 까페에 들락거릴때에
나름 전통의 중국집으로 자주언급되었던,
나따위의 길치는 영원히 찾아갈 수 없을것만 같던
바로 그 곳이 적나라하게 우뚝 서있었던게다.
그것을 목격한 나는 의미없는 고민을 약 5초간 지속한 후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둥 마는둥 하며
'무단횡단'으로 그곳을 향해 건너갔다.
사진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나름 새삥'인듯한 붉은 간판인 육리반점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나이든 아주머니와 많이 나이든 아주머니(거의 할머니) 한분이
심중을 알아차리기 힘든 시크한 포커페이스로 맞아주셨다.
나는 일부러 부엌이 보이는 테이블로 자리를 잡고 아닌척 모르는척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부엌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요리사가 한분 있었고,
많이 나이든 아주머니는 가게 주인인듯 터줏대감 스타일의 주방보조로,
그냥 나이든 아주머니는 서빙과 전화응대, 계산 등을 담당하는 보조 겸 매니저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수시로 배달원 아저씨가 가끔 들락날락거리곤 했다.)
테이블별 메뉴판따윈 없고 가게 중앙에 메뉴판이 달랑달랑 줄에 걸려 있었는데,
뭐 기본적인 것은 있었으나 대체로 단촐한 편이었다.
뭘 시킬까 고민하다가 그냥 '간짜장+군만두'의 베이직한 조합을 주문했다.
음식은 생각보단 조금 오래 걸려서 나왔다.
하지만 뭐 그래봤자 10분정도?
군만두가 먼저 나오고, 잠시 후 짜장이 딸려나왔는데,
먼저 군만두는 적당히 바삭하게 잘 튀겨져 나와서
처음 한입 베어물땐 '직접 만든 군만두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하게 만들었지만
계속 먹다보니 아무래도 공장표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두속도 좀 더 들어있고, 나름 잘튀겨서 공장표치곤 먹을만했다.
(혹시 직접 만든거라면 죄송합니다.)
짜장은 직접 뽑은 면은 아니었지만 충실히 잘 삶아져서 나왔고,
간짜장소스는 국물이 별로 없고 양파만 가득 들어있는 것처럼 보여
그냥 한번에 부어서 먹기 시작했는데, 그 사소한 선택이 후회를 부르는 전주곡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_-;
위에서도 말했지만 간짜장소스는 국물이 별로 없으면서도 묽은 편이어서
'과연 비벼지기나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스를 부어보니 면과 따로 섞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적당하게 조리된 국물이었다.
짜장 속도 뒤적뒤적해보니 잘게썬 양파 덤불-_-속에
완두콩이며 돼지고기며 다채롭게 들어있어 나름 풍성한 편이었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한바퀴 말아 한입 먹어보니
그리 달달하진 않으면서도 잘 볶아진 춘장향이 입안에 펴지는게
'아, 맛을 낼 줄 아는 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단무지는 적당히 새콤달콤했고, 양파는 싱싱하게 아삭거려
짜장/만두의 보조 역할을 해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짜장소스는 좀 짠편이었다.
내 입맛에 맞게 한다면 아마도 베이스로 깔려있던 짜장국물을
최소한 세 수저정도는 남겨놓고 덜어서 비벼야 했을게다.
그리고 또 처음에는 잘 볶아진 것처럼 느껴졌던 짜장소스도
계속 먹다보니 약간 탄듯한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맛이 없다거나 그렇게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조합이 조합이다보니 약간 느끼하면서 쉽게 배가 불러왔을뿐.
결국 짜장속은 조금 남길수밖에 없었다.
배가 부른데도 짠 음식을 계속 먹는다는건
그야말로 더러운 돼지들이나 하는 짓거리 아니겠음?
아무튼 내가 보기에 말로만, 글로만 전해듣던 '육리반점'의 명성은
그다지 헛되지 않은 듯했다.
만약 타지방에서 찾아오면서까지 맛보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면,
그의 여유시간과 이동 동선과 식탐을 고려해서
다시한번 신중히 결정해 볼것을 권유하고 싶다.
하지만 가까운데 산다면 한번쯤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싶다.
다만 짜장을 시킨다면 짤지 모르니 일단 소스를 좀 덜어낸후
간을 맞춰가며 먹는것을 추천한다.
(뭐..어쩌면 간짜장만 짠것일수도 있겠다-_-)
P.S 아, 다른 곳들이랑 비교한다면
강남쪽의 깔끔하게 하는 요릿집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입에 맞지 않을 수 있고,
옛날 허름한 중국집 스타일,
마치 성석제씨의 수필에 나오는 그런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어느정도 괜찮다고 느낄만할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