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lon 2009. 4. 19. 13:59

나에게 있어 해장이란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해장, 그리고 이른바 '해장국'이란
전일의 과음을 달래기 위한 행위로서의 의미에 더하여

과음을 하게 된 나를 추스리고, 정신을 차리고,

또한 해장을 하는동안
주위의 경관을 둘러보며 하게되는
별의별 잡생각들까지 후루룩 말아
함께 들이켤 수 있게 해주는 그야말로 시원한 국물,

그리고 그러한 흡입을 통해 내외면의 찌꺼기를 배출하는
나름 '숭고한' 행위인 것이다.


난 상당히 게으른 놈이지만
그래도 해장만큼은
라면 등으로 간단히 때운다거나 시켜먹거나 하지 않고
왠만하면 밖으로 나가 사먹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야만 전날의 환호 또는 우울로 흥청망청했던 거리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되어 있는 광경을 보며,
그로부터 우리의 생존과 안녕을 위한 건강한 생활의 에너지-_-를 느끼며,

정신을 차릴 기회를 얻게되기 때문이다.


또한 해장을 치를때의 난 무척 뜸을 들이는 사람이 된다.
평소엔 (일반인의 기준으론) 놀라자빠질 정도의
음식물 흡입속도를 자랑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자면,
국물을 떠넣고 우물우물거린다든지.
오래도록 깍두기를 씹으며 멍을 때린다든지 하는
한심한 작태를 오래도록 유지하곤 한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장음식인 선지국! -

<출처 : [비밀이야] 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mardukas>





그리고 그렇게 제대로 해장의 의식을 치른 날만큼은
최소한 반나절 이상은 혼자만의 잡생각을 즐기게 된다.

대부분 타지에서 술을 처먹기 때문에
지하철, 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 돌아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나의 몽롱한 뇌내공간속에 스며들면서
온갖 잡다한 사고가 다중적으로 얽혀나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이는 이런 저런 사람들,

억척스레 빈자리를 탐색하는 대춧빛 얼굴의 아주머니,
설레임을 예쁘게 입은 봄옷에 갈무리하고 조신히 앉아있는 다리가 예쁜 아가씨(-_-),
소박하지만 서로 꼬옥 손을 붙잡고 소소한 대화를 소곤거리는 젋은 부부,
부모님 손을 잡고 휴일을 즐기러온 신나는 아이,
그리고 그런 광경을 흐뭇하게 감상하는 점잖은 할아버지,

여기에 가끔 등장하게 되는
자동팽이나 관절보호대 등을 팔러다니는 행상인에 의한
분위기의 파격 등등.


이런 모든 광경들이, 온갖 군상들이
나의 잡생각의 단초를 끊임없이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의 사이사이
화장실을 몇 번 들락날락거려주면

그제야 비로소 전날로부터 이어진 음주행위의 마무리를 지은듯한 느낌이 오며
정신과 육체에 평화와 안도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결국 나에게 해장이란,

알콜흡입을 통해 까발려진,
뭔가 해방된 느낌에 날뛰던 전날의 기억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아니 면죄부-_-를 획득하는 과정인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