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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ㅅㅎㄱ는 그립다
    카테고리 없음 2008. 8. 3. 11:22


    #1. 조선삼계탕
    삼계탕을 먹었다. 아무리 사람이 그리운 군인이지만,
    호구기질은 애써 억눌렀다.


    #2. 길거리아
    어이없이웃긴 광경을 목격한 후
    딸기쥬스를 홀짝거렸다.


    #3. 도서관
    버스, 정류장에 대한 스물두명의 글을 읽었다.
    대부분 전문작가도 아니며,
    그다지 숙성을 거치지 않은
    정장을 빼입은 더벅머리같은 글들을 읽었다.
    정류장이라는 화두에 반응하기위해 오버한 티가 엿보였으나,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뭐, 읽을만한 텍스트였다.
    비오는 오늘과는 더욱 잘 어울렸으니.


    #4. 길거리아
    진짜 하늘이 드문드문 비치는 멋진 우산을 빌렸다.
    그놈자식의 바보같은 표정과 그분의 자애로운 입웃음,
    심심해서흥미로운 대상을 발견한 알바의 수줍은 몇마디를
    들으니 기운이 났다. 하지만 여기도 아니야.


    #5. 버스
    버스에 올라타니 딱 두자리가 남아있었다.
    젊은 여자, 덩치큰 남자가 각각 한자리씩 차지한 후
    남겨진 잉여좌석.

    넓은자리를 원하는 것뿐이라 합리화시키며
    젊은 '여자'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쳐 잤다.


    #6. 곰소설렁탕
    언젠가 같이 수업을 듣던 이름모를 그분과
    함께 들렀던 수원역 앞의 곰소설렁탕.

    내가 느끼기엔 깔끔한 체인점이긴 하나 진국도 아니며
    특징도 없는, 친절하지만 그닥 맛있지 않은
    그곳을 다시한번 들렀다.

    그분은 괜찮은 것 같아 자주 온다고 했지만,
    나는 그당시부터 지금까지 수긍하지 않고있다.

    호기롭게 설렁탕과 감자전을 시켰으나
    감자전이 안된다는 치욕스런 상황에서,

    또한 날 제외한 약 10 테이블정도가 죄다
    남녀1명씩 커플로 앉아 처먹고 계시던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난 설렁탕과 배추김치와 석박지와 고추와 쌈장을
    맛없게 싹싹 비워주었다.


    #7. 애경백화점
    다음주 저녁을 마련하기위해 '장'을 보았다.
    예의성 멘트에 대해 실시한 파블로프의개같은반응이 떠오르며,
    뇌의 주름이 자글자글해져버렸다.

    결국 기본품목에 더해
    하이트와 아사히와 모듬전과 샌드위치와 메추리알을
    득해버렸으며, 지금 다 처먹어간다.

    뭔가 알수없는 가슴아림이 피어올랐다.


    #8. 지하철
    탑승후 출입문쪽 구석에 자리를 잡아 섰다.
    옆아래에는 피부가 험준한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그녀 옆에 서서 요즘 빠져있는 스도쿠를 플레이하는데,
    그녀는 내가 자신을 쳐다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인지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은근한 짜증을 풍기며 나를 의식해댔다.

    대체 이유가 뭔가.
    내가 핸드폰을 보는 척 하면서
    그녀 표면에 곱게 덮여있는,
    7종 이상(이라고 추측되는)의 크림과 로션으로도
    은폐하지 못한 제주도 현무암스러운 그녀의 자태를
    몰래 훔쳐보고 있다고 의심한다는 건가.

    없는 눈썹이라도 뽑아주고 싶을 정도로 슬펐다.
    난 어떻게 해야하나..
    뭐 결국은 그냥 스도쿠만 계속 해댔고,
    마지막엔 그분도 같이 평택에 내렸기에
    보란듯이 냉정하게 추월해주었을 뿐이었다.


    #9. T World
    빌어먹듯이 고장나버린 핸드폰 충전기와
    잃어버린 핸드폰 잭을 구입하기 위해
    역앞의 T  World 인지 Station 인지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멀리 가게가 보인다.
    '문은 열었구나.'
    그리고 가게 안의 아가씨가 둘 보인다.
    그리고 갑자기 안쪽의 아가씨는
    반대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난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갔다.
    걸어가던 아가씨는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멈춰선다.

    '우와, 귀엽구나'

    20대 초반 특유의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가득한
    극히 사무적 표정으로 내게 용건을 물어온다.

    "안녕하세요! 뭐 찾으시는 거 있으신가요?"


    "핸드폰 잭이랑 충전기 있나요?"

    이렇듯 나는 나의 원하는 바를 친절히 말해주었으나,
    슬프게도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던 점장아저씨가 대답을 해준다.

    "어, 삼성휴대폰 잭은 다 떨어졌는데.."


    난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
    "그럼 충전기라도 주세요."


    그런데 그는 또또
    상큼싱싱한 그녀가 대체 뭐가 못미더운지,


    "5천원이야"

    "예?" (점원 아가씨)

    "충전기 5천원이라고"

    무슨 4957.3원이라도 되는듯한 표정으로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풀죽지 않았다.
    발랄한 걸음걸이로 충전기를 꺼내어 사근사근하게 건내준다.
    젊으니깐. 그녀에겐 꿈이 있으니깐. (뭔 개소리인지)

    여튼 상큼하고 사무적인 표정으로

    "5천원입니다."

    난 내 방의 쓰레기를 더이상 늘리면 안되겠다 싶어,
    또한 조금이라도 그녀의 아름다운 젊음을
    염통에 담아가고 싶어서

    충전기 박스 포장을 풀어내곤 말했다.

    "쓰레기 버려주세요"


    그리곤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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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뭔가.
    지휘검열을 앞둔 더워죽겠는 나는 뭔가.
    까다롭고 집요하고 막되먹은 놈이지만,
    그럼에도 난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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