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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08.8.19카테고리 없음 2008. 8. 19. 21:24
1. 오징어&땅콩의 재발견일요일에 숙소로 돌아오면서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어
맥주 몇캔과 마른안주류를 샀다
평택역엔 의외로 제대로 된 슈퍼가 없어서
알콜릭한 마음이 들때면 화장품가게와 라면집 사이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사들어가곤 하는데,오늘따라 식사겸용이 아닌 그냥 안주류가 생각나서
그냥 오징어 한마리와 오땅셋트를 하나씩 구입했다.일요일엔 오징어만 함께하고
오늘에야 오땅셋을 꺼내먹고 있는데,아, 사실 오땅셋의 오징어는 오징어채이다.
아무튼 그런데 맥주를 가볍게 들이킨 후 오땅을 한번 씹어주니,
약간 더러운 품질의 오징어채라 비릿한 느낌이 올라오는데도
맥주가 입안에 물려주고간 미세한 보리향을 한껏 살려주는
엄청난 효과를 느껴버렸다.시원하게 해준 다음 고소하게(혹은 구수하게) 마무리해주는 맛이랄까!
이건 마치 마요네즈 샐러드를 먹다가 된장국을 떠먹으면
구수함이 여섯배 증폭된다는 바로 그 효과와도 맞먹을 정도였으니,
할말 다했지요.
'아아 이래서 맥주엔 오땅이구나!'
호프집에서 먹을때는 왜 이정도로 느끼질 못했는지!오땅의 재발견으로 행복한 밤이다.
2.
男 : 며칠 있어요?
女 : 어..뭐, 하루..이틀쯤?
男 : 이틀 있구나. (라고 말하면서 시선을 약간 피한다. 쑥쓰러움을 표현)
女 :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다가 다시 그를 응시하며 나름 발랄하게) 내일, 완도 구경 시켜줄래요?
男 : (당황스런 표정으로) 예? 어딜 구경해야되나 그럼..(말을 얼버무리듯이)
女 : 음. (살짝 웃으며) 그럼 내일 뵐께요.
男 : (머리를 긁적이며) 아, 뭐..그럼, 내일 아침에 여기 제가 대기를 할께요.
女 : 아, 네, 그럼.. 아홉시쯤.
男 : (곧바로 대답) 네,ㅎ.
女 : 네. (뭔가 말을 더할듯한 표정을 짓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응시한다.)
男 : 네, 잘자요~
女 : (예쁘게 목례한 후 호텔방으로 들어간다)
재미있다. 젊은 연놈들이 완도든 지옥도든 어딜 같이 가든 안좋을끄나.
먹는이야기중에 나오는거라 그런지 더 찌릿찌릿?
3. 갑자기 애정물이 보고파졌다. 술을 처먹으니 말이다.
하지만 새드엔딩은 싫다. 설레는 청춘이야기가 좋다. 아직 난 청춘이니까.
헐리우드의 로맨틱코미디는 보기가 싫다.
물론 일단 보게되면 재미있게 보겠지만 말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4월 이야기.
아주 가끔 100문 100답따위를 읽어보다 나오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이따위 질문들이 대체 왜 나오는 건지 몰랐다.
장르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고, 영화라니.
왜 이딴식으로 구체적인 대답을 추상적으로 요구하냐 말이다.
뭐 지금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10'개만' 골라라. 정도라면
저 두 작품은 확실히 들어갈 수 있다.
아무튼 좋아하는 영화다.
난 애정물이라도 저런 애정물이 좋다.
추억을 가득 담을 수 있는 일상의 허름한 가게와 골목길이 나오면 그저 좋다.
아아, 좋아라.
25일이 기다려진다. 아무일도 없길 바라며. 시너스이수 화이팅!
3. 학창시절의 나는 역사과목을 좋아했었다.
세계사는 물론 국사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역사라는게 좋았다.
옛날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살아왔고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건지에 대한 앎이 좋았다.
하지만 더러운 국가주의적 주입식 이데올로기가
나에게 엄습해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카'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만
큰 감흠은 받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시험범위 내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당시까지의 나는 우리 민족 또는 한국이 아닌,
대륙, 지역, 나라, 민족의 이야기는 그닥 잘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들의 문화는 왠지 우리나라의 것에 비해 정이 가지 않거나 뒤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나서부터,
쿠사 활동을 소극적으로나마 조금씩 하게 되면서부터,
하찮은 정도나마 자립적으로 읽어댈 수 있게 되면서부터 나는 생각했다.
나와 다른 그들의 문화 또한 내가 무시하거나 냉소를 지을만한 권리는 없다.
그들도 그들만의 알차고 진실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감동받을줄 알고 분노할줄 알며, 인간다움이 뭔지 고민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전까지의 난 미처 몰랐다.
예컨데 사회과부도를 봐도 인구나 국민소득, 수출액 등을
서로 비교하며 다른 나라에 살고있는 이들이란 나와 완전히 다른,
경쟁이 아닌 다른 어떤 것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타자'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피자는 빈대떡의 경쟁상대 이상이 아니었으며,
물론 내가 좋아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언젠간 뛰어넘어 극복해야할 상대였다.
뭐 이딴식이었다. 편협하다못해 저급하디 저급했다. 내 생각, 내 사고관이라는 것은.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물품과 습관과 문화에도 진정성이 깃들여있을 수 있음을.
내가 속한 문화의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응당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비교하는 구도에서는
타문화가 항상 뒤떨어져보여야 함을.
평화민족이며 백의민족인 우리의 것만이 소중한 것이 아님을.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소중한 것들이 있음을.
그런 부분을 우리가 더 낫다고, 더 나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난 알아버렸다.
무조건 증오해야만 하는 대상이던 '일본'의 골목길에서
진실한 인간스런 정이 묻어나보일 수도 있음을.
은연중에 왠지 더럽다고 생각해왔던
인도네시아 또는 우간다에서도 예쁜 사랑이란 존재함을.
그 당연한 것을 난 그제야 알아버렸다.
그들도 나처럼 호흡하고, 배우고 생각하며,
욕망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며 행위함을, 그러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난 그제야 알아버렸던거다.
정말 맹세코 난 그전까진 몰랐다. 생각조차 못했다.
그들은 나와 다른 타자였을 뿐이며,
그들의 이성과 감성과 경험과 그로부터 나오는 말과 행위들은
내게 있어 어떤 작은 의미조차 인정받기 힘든(그럴 생각조차 나지 않는)
사고 범위 내의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마치 베르베르의 개미 세계를 인간들이 모르고 있었던(또한 관심도 없었던)
상황이랄까.
아무튼 나는 그랬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국가라는 경계에서만 느낀 것은 아니었으며,
우리 한국사회라는 것도 한가지로만 볼 수 없는,
우리가 모르는 고통과, 슬픔과, 고뇌와, 어려움과, 외압과, 더러운 환경과,
혹은 우리가 모르는 기쁨과 쾌락, 욕망을 추구하고 느끼는 부류가 있음을
알게되면서부터였다.
난 글을 쓰면서 많이 고치고 또 고치는 편인데
이건 한번에 써버렸다.
이번 것은 더이상 고치지 않을게다.
아무튼, 콜럼비아든, 인도든, 에스파냐든, 파퓨아뉴기니든간에
그런 식으로 다르다는 것 자체가 진정성을 가릴 기준을 될 수 없다.
'더러운 한국인보단 진실한 외국인이 더 인간다울 수 있다'
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난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을 소비했는가.
어째서 진정성, 진실, 한과 같은 정서 등등 이라는 것은 나와같은 한국인들만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말이다.
왜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을 타자화하는데 이렇게 익숙하게 되었는가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사실을 알아버린 데에 왜이렇게 대단히 기뻐했는가 말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을 말이다.
어이없는 일이다.
별 내용도 없는 글이 졸라 길어져버렸다.
여전히 나는 역사라는 걸 배우고 알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현재의 역사, 국사 교과는 동북공정조차 완벽히 몰아붙이지 못할만큼
깨끗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