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돌아가기 위한 길은,
항상 정해진 코스가 있다.
평택역, 피자헛, 파주옥, XX서점 등등..
오늘은 이중에서도 내게 항상 속임수의 유혹을 제공한
"케잌타운" 이야기이다.
#1.
사실 이곳은 계속 모른채, 또는 무심코 지나치던 곳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방문할 마음이 들게 된 것은,
발렌타인인지 화이트데이 무렵이었을게다.
그...쌀국수를 남겨먹던 점박이녀 무렵이었는데,
어느날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 문득 좌측을 돌아보니
"Cake Town"이란 간판에 깔끔한 제과점이 놓여있길래
들어가보게 된 것이다.
처음엔
간단히 한밤중에 처먹을만한 빵이나 고르려 들어갔는데,
마침 시즌이 시즌인지라 각종 초콜렛들이 다소곳이 진열되어 있어,
'어쩌다' 커플들만 둘러본다는 금단의 구역까지 둘러보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난 깔끔하고 칙칙한 색깔의 포장상자에 열광하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
짙은 회색, 와인, 카키, 다크옐로우 등등
채도가 높은 색상의 깔끔한 포장상자들을 보면
왠지모르게 가슴이 설레이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대략 이런 느낌? 색깔은 둘다 맘에 들고,
위보단 세련되게, 아래보단 작고 귀엽게? 아무튼 그런 스타일이랄까>
결국 나는 빵을 고르다가 충동적으로 그중 하나를 고르게 되었다.
당시 쌀국수점박이녀도 곧 다시 만나기로 되어 있었고,
딱히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간 누구에게 줄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당시의 나는 주제넘게도
발렌화이트 시즌의 설레이는 분위기를 즐기며
결국 구입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던거다.)
난 점원에게 물었다.
"저기 작은 상자는 얼마에요?"
내가 묻자, 점원은 "XX00원"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대답해주었고,
그중 하나를 골라 "저걸로 포장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빵을 고르고있던 한 커플 중
여자 쪽의 시선이 이 초콜렛 구입광경을 향해 강렬히 집중되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표정을 읽어버렸다.
'저 남자가 초콜렛을 사네?
여자친구 주려고 사는 거겠지?
별일 아닌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는구나.
그럼 내 옆에 붙어있는 이새끼는 뭐지?
후...'
라는 식의 심정 변화를.
(난 젠장맞게 애인 그 비슷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즉, 내가 그것을 고르며 가격을 물어봄으로 해서,
짧게 삭발을 해서 인상이 더 더러운,
'그녀의 그'에게 쌓였던 섭섭함이 고요히 폭발했음을 읽어버린거다.
즉즉, 나의 물음 직후 찰나의 시간동안 그녀의 눈은 동그랗게 떠졌었고,
그 후 표정을 수습하는 중에 잠깐 스쳐간 그녀의 회한을 나는
느껴버린 것이다.
곧 그녀의 남자친구도 그녀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그녀에게 때늦은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XX야, 저거 하나 사줄까?"
하지만 그녀는 이미 "됐어." 하며 샐쭉한 표정으로 대답하며
딴청을 피운다. 즉, 이미 삐져버렸다.
이걸보고 어쩌면 그 남자는 "이건 뭐, 여자마음은 통 알수가 없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난 그렇게 초콜릿 상자를 사왔었고,
점박이 그녀는 도무지 나완 맞지 않았고,
누군가가 바람잡아 따라나갔던 단체미팅은 처참했고,
결국 애인과 싸우고 고민하던 친구에게 고이 드렸다.
그 후 비온뒤 굳어진 땅처럼 돈독해진 그것들을 볼때마다 울분이 치솟는 거였다.
#2.
이건 오늘 이야기다.
정말 위의 일 이후로 별로 빵 먹을 일도 없고, 먹고싶은 적도 별로 없었던 나는,
대략 9개월만에 이곳을 충동 방문하게 되었다.
파주옥의 묽고 끈적끈적한 곰탕을 들이킨 후
편의점에서 구입한 술에 대응할 안주로
단것이 땡겨 결국 방문하게 되었던 거다.
가게에 들어가니 앳되지만 예쁘지 않은 외모의
두 여성 점원이 이제 슬슬 마감해야겠다는 느낌을 풀풀 풍기며
나를 맞아주었다.
왠지 오늘따라 케잌이 땡겼다.
'케잌타운'에서 케잌을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사실도
나를 강하게 자극했다.
진열대를 둘러보고 있는 나에게,
마감이 가까워서 그런지
예쁘지 않은 점원 중 하나가 내 옆에 서서
나의 초이스를 도와주는 척 하며 아무말도 안하고 그냥 서있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주의깊은 선택을 포기한채 (그녀들의 이른 퇴근을 위해)
무난하게 느끼한 티라미슈와 고구마케잌을 선택해버렸다.
그런데 2개를 선택한 댓가일까,
그녀들은 나에게 물어왔다.
"스푼은 몇개 드릴까요?'
순간 난 그녀들의 질문이 이렇게 느껴졌다.
"가서 혼자 처먹을꺼니? 아님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거니?"
약간의 시간동안 고민했다.
사실은 혼자 다 처먹고 배를 두드리며 잘꺼지만,
처량해지기 싫으므로.
해서 고민하다가 무려 약 2초간의 텀을 둔 후
대답하게 되었다. "두..개요"
그리곤 생각했다.
'아 ㅅㅂ 이미 늦었구나!'
질문과 대답 사이의 공백을 2초나 흐르도록 놔두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버린 것이다.
그녀들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태의 녹초까진 아니었다면
어쩌면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끼, 혼자 처먹을거면서.'
결국 왠지 화끈거리는 얼굴로 가게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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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별것아닌 에피소드, 별것아닌 가게, 케잌타운.
하지만 난 그곳에서 항상 속임수만 쓴 기분이다.
마치 여자친구가 있는 듯이.
또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듯이 행세한 나는 가식적인 사람이었다.
그곳에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