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통북 차도를 지나 삼성아파트에 도착하기 직전이었을게다.
버스는 종종 볼 수 있는 성질맞은 버스기사들이 으레 그렇듯이
갑자기 급정거를 했고,
이때문에 출구쪽 길다란 기둥을 의지하고 있던
짐이 많은 할머님 한분이 관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이 중심을 잃고 앞쪽으로 넘어질듯 쏠리셨다.
다행히 앞쪽엔 남자 한명이 서 있었고,
그는 엉겁결에 당황한 표정으로, 그러나 괜찮다는 듯한 웃음을 동시에 지은 채
그 할머님을 받쳐든 채 잠시간 버텨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짧은 순간 그 광경을 포착해 지켜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국인이 아니며,
또한 예전 개그물의 '맹구'를 닮은 그가 지어준 순간의 표정은
근래 들어 보게 된 무언가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비록 간지나는 핸섬가이는 아니지만,
이것저것 따지며 잴 시간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대응해야만 했던 상황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맑은 본성을 보았기 때문이랄까.
그것을 보고나서 약 5초 동안 그 광경을
마음속으로 다시 재현해본 순간,
나의 뇌와 심장은 약 10초간 뭔가 설레이는 감동에 강력히 휩싸였다.
오늘따라 왠지모를 '우울'과 '슬픔'이라는
낯간지러운 감정에 사로잡혀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그 중 더러운 거품들이 말끔히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곤 상투적인 레파토리대로
청승을 떨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