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석 당일.
정말 오랜만에 글이란걸 써본다.
1. 추석 전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의를 듣고나서,
그냘 강의 복습을 위해 독서실 책상 앞에 앉으니
너무 공부가 하기 싫어서 1시간 남짓 책을 보다가
그만 나와버렸다.
신림역에 도착해서
그래도 추석연휴니깐,
가까운 시장에 들러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동그랑땡 등 부침개류랑
추가로 튀김류까지 잔뜩 사들고,
이왕 무너지는 김에 술까지 몇 병 사들고 방에 와버렸다.
(아마, 적어도 방에서는 금주하기로 마음먹은 지
대략 한달-_-도 약간 안되었을 게다.)
아무튼 그래도
노란색 예쁜 접시에 키친타올을 한겹 둘러
여러 먹을 것을 대충 담아두고
요즘 시간이 없어 미뤄뒀던 드라마들을 보면서
산사춘 한병 따서 한잔 들이키니
세상의 모든 행복이 다 내게 와준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러다가 한편으로는
이렇게 완전히 혼자 보내는 명절이란 처음이라는 생각에
서글픈 생각이 아예 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너무 늦게 자버렸다. (대략 4시쯤?)
2. 추석 당일
그래도 명절 당일이라고
아침부터 시작해야 할 강의가 오후로 미뤄졌다.
이번에 듣고 있는 '추석특집 상표법' 비디오 강의는
생각보다 수강생이 많아서 대략 스무 명은 넘는데,
생각하기에 그 절반 이상은
아마 '추석 당일 아침'에 강의를 시작한다고 해도
딱히 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어제 간신히 도착해서
하루종일 맨 뒤에서 수업을 들으며 졸았던 기억에
오늘은 거의 강의 1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있었다.
독한 사람들...
원래 저녁을 잘 먹지 않는데
오후 강의를 꼬박 듣고 나니 뭐랄까..
진이 좀 빠지는 느낌이라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역시 추석 당일이라 문을 여는 식당은 거의 없어서
평소에 지나다니면서 느끼기엔
정말 장사 안되보이고 대충 음식을 할 것만 같았던
'양철북'이라는 양대창집, 그 딱 한 곳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들어가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를 포함 세 테이블의 손님 무리들이 앉아있었는데
그들 모두. 그리고 우리 이후로 들어오는 손님들조차도
모두 변시생이었다.
결국 추석 당일, 역삼역 주변에서 저녁을 사먹는 사람들이란
그들, 아니 우리들밖엔 있을수 없었던 거였나보다.
저녁을 먹고 강의실에 들어와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복귀해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론
오늘은 내 뒤에 앉은,
특허법 강의를 같이 들었던 적이 있으며,
약간 지쳐보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건강한 인상의,
크게 예쁘진 않지만 새침한 매력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러면서 강의 도중에 식사조차 하지 않(으리라 추정되)는
매우 독한-_- 그 여학생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녁시간 내내 그렇게 계속 공부했는지도..)
아무튼 저녁 강의는 곧바로 시작했고,
나는 저녁밥을 한그릇 더 추가해 처먹은 걸 후회하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혼자 몰래 하품을 하고 뺨을 때리고 물을 빈번하게 처먹는 등
나름 졸음과의 혈투를 벌이다가
어느덧 길고 긴 강의가 끝나 시계를 보니 10시 반쯤 되었다.
그리곤 같이 수업듣는 형의 제안에
강남역까지 산책-_-하며 내려와서,
텅텅 빈 생소한 강남역을 구경한 다음
방에 도착해서 어제 남은 튀김과 전을 다시 데워놓고
함께 먹을 술을 위해 냉장고를 뒤져보니
이런 젠장,
조금 더 시원하게 먹고 싶어 넣어두었던
냉동실의 맥주를 잊고 있었던게다.
어제에 이어 너무너무너무 술이땡겼던 나는
정말 철저하게 꽝꽝 얼어버린 맥주병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부드럽게 나의 따뜻한 뱃살-_-에 굴려보기도 하고
터프하게 물을 담아 그 속에서 휘둘러보기도 하다가
결국 냄비에 물을 끓여
그 안에 맥주병을 몇분간 중탕-_-시키고 나서야
시원한 '액체' 상태의 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주 먹지 못하게 된 술이라 그런지
맥주 한 두잔 만으로 알딸딸함이 밀려드는데,
그 느낌이 난 너무 좋았다.
왠지 모르게 기분좋은 밤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1시를 넘어가고
내일도 강의는 풀로 남아있고,
절대 보장할 수 없을 '합격'이란 목표는
여전히 애매하고 멀게만 느껴지고,
20대 후반의 시간이란
명절에도 하릴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뭐, 아무튼, 그래도
술기운이라도 함께해줘서 기분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