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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팅 목격하다 (‘12.10.13)
    카테고리 없음 2012. 11. 27. 01:05

     

    오늘도 역시, 저녁 9시 좀 넘어

    일찍 독서실을 나와


    굳이 강남역까지 내려가

    지하철을 타러가는 길에 목격한 광경이다.

     

    앞에 가던 남자가

    그 옆을 지나가던 여자를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말을 거는데,


    처음에 나는 그냥 서로 아는 사이인 줄로만 알았다.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근데 남자가 그렇게 자연스럽게도

    그녀의 어깨를 톡톡 하고난 후


    급격히 어깨를 움츠리며

    소극적인 자세로 뭐라뭐라 말을 건네는데,


    여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계속 가는 거였다.

     

    그래서 남자의 얼굴을 보니
    말갛게 달아오른게 좀 거나하게 취한 상태이고,


    부산한 머리에 대충 니트에 면바지 걸치고 나온 걸 보니
    어딘가에서 남자끼리 술먹다가

    혼자 떨어져나와 방황하다 그런게 아닌가 싶었다.

     

    어쨌든 아무리 사람이 많은 대로변이었다지만

    (그 항상 사람많은 파고다 어학원 앞길 쯤 되었다)


    생전 처음보는 (정확히는 보지도 않은)

    술냄새 풍기는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는 것은
    아마 그녀에게 무섭고도 싫은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다행히도(?) 나름 술기운에 용기냈던 그 남자는

    매우 소극적인 인물이었고,


    자신의 멘트가 아예 씨알도 먹히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 남자는
    더 집착하거나 화를 내는 등의 공격적인 성향을 전혀 보이지 않고,


    그만 부끄러운 나머지 거의 뛰듯이 옆 건물로 달려가
    건물 입구에 서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강남역 밤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리고 앞서가던 여자는
    원래 그곳에 용무가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달려들어간 건물의

    바로 다음 건물 1층의 옷가게에 들어가버렸다.

     

    나름 태연하게 무시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황당함, 또는 무서움이 없지 않았을 것임을 생각할 때
    아마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슬펐다.


    그녀가 느꼈을 불쾌감, 혹은 공포감과,
    그가 방출한 술냄새나는 용기도,
    또한 아예 거절조차 당하지 못한 채 각하당한

    그의 충동적인 호감까지도


    모두 지극히 슬프게 느껴졌다.


    지금은 한가을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걸 목격하고,

    이런 글을 싸지르고 있는 내 자신을 생각하니 더 슬프다.

     

    추가로, 너무 빨리 벌어진 일인 탓에

    그녀의 앞모습이 어땠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흰 스커트정장을 단정히 차려입은

    그녀의 뒷모습은 무척 예쁜 편이었다.

     

    뭐, 그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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